검은 갈매기 펠릭스 호세

검은 갈매기 펠릭스 호세

검은 갈매기 펠릭스 호세

Blog Article

부산 갈매기들의 희망, 검은 갈매기 펠릭스 호세(2001)


펠릭스 호세, 그의 이름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1999년 플레이오프 5차전 9회 말에 당대 최고의 마무리였던 임창용으로부터 끝내기 3점 홈런을 치는 장면이 연상된다. 그리고 그 홈런 한 방으로 롯데는 뒷심을 발휘하며 삼성을 물리치고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메이저리그 올스타 출신 한국에 오다


1991년 세인트루이스 소속으로 메이저리그 올스타에 뽑히기도 한 호세는 당시 용병 중 경력으로 치면 최고의 선수였다. 그리고 기대에 부응하듯 펠릭스 호세는 1999년 홈런 36개와 122타점을 곁들이며 롯데를 포스트시즌에 올리는 데 한몫했고 팬들 역시 소총부대 일색인 전통적인 롯데 타선에서 프랜차이즈 사상 최다인 36개의 홈런을 날리는 호세에 열광했다.

또한 1999년 삼성과의 플레이오프에서는 패색이 짙던 5차전 9회 말 3 대 5로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당대 최고의 마무리 임창용으로부터 극적인 끝내기 역전 3점 홈런을 쳐냈고 7차전에서도 2대 0으로 끌려가던 6회 선발 노장진의 속구를 통타 홈런으로 연결시키면서 팬들의 뇌리 속에 강렬히 남게 된다.

메이저리그로, 그리고 다시 리턴


플레이오프 때의 불미스러운 일로 1999시즌을 마친 호세는 2000시즌 메이저리그 최고의 구단인 양키스로부터 오퍼를 받은 후 주저 없이 뉴욕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하지만 1년 뒤 호세는 '돌아와요 부산항에'의 노랫가락처럼 팬들의 열광을 떠안은 채 다시금 사직구장으로 복귀를 한다.

2001시즌 호세는 1999시즌과 같이 폭발적인 모습을 보여 줬고 투수들은 괴물 같은 호세를 집중 견제로 맞대응했다. 이는 보복성 트레이드로 인해 강타자 마해영이 빠져 나간 것도 일조를 했고 결국 통산 최고출루율 1위(0.503), 최다 볼넷(127개)을 기록하게 된다.

또한 가공할 만한 폭발력을 앞세워 홈런 36개를 기록하며 자신이 세운 롯데 프랜차이즈 최다 홈런 기록과 타이를 이루며 이승엽에 이어 홈런 2위를 기록했다.

장타율 역시 7할에 육박하는(0.695) 기록을 앞세워 OPS 부문에서 백인천에 이어 역대 2위에 오르게 된다. 단일시즌 최다 홈런을 기록하고 있는 이승엽(1999-54개, 2003-56개), 심정수(2003-53개)보다 더 높은 OPS를 기록한 것을 확인할 수 있고 이로 말미암아 투수들한테 얼마나 큰 공포심을 줬는지도 짐작할 수 있다.

호세의 불미스러운 사고와 몰락하는 롯데


시즌 막바지 이승엽과 홈런 레이스를 했던 호세는 9월 18일 마산에서 열린 삼성과의 경기에서 배영수의 빈볼에 격분하여 폭행을 행사하는 바람에 남은 경기 출정 정지를 당하고 만다.

시즌 막바지까지 다섯 팀이 4강 싸움을 하는 유례없는 상황에서 팀 타선의 중심인 호세의 돌발행동의 여파는 컸고 결국 롯데는 꼴찌로 시즌을 마감하게 된다. 한편 2001 시즌은 꼴찌 팀 승률이 역대 최고인 0.457이라는 사실로도 확인할 수 있듯이 막판까지 치열한 순위다툼을 벌였던 한 해였다.

그렇게 홀연히 시즌을 마친 호세는 이듬해 몬트리올과 이중계약을 하며 영구제명을 당하게 된다. 1999, 2000시즌 2년 연속으로 플레이오프에 올렸던 덕장 김명성 감독과 임수혁 그리고 호세를 2001시즌에 떠나 보낸 롯데는 기나긴 부진의 늪에 빠지게 된다.

3번째 유턴・・・ 하지만


매년 용병농사에 애를 먹던 롯데는 다시 한 번 호세를 영입했고 그는 투고타저였던 2006시즌 22홈런과 78타점으로 각각 2위와 4위에 오르면서 녹록치 않은 기량을 보여 주었다. 처음으로 2년 연속으로 뛴 2007년도에는 시즌 초 아킬레스건 부상의 여파로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고 결국 시즌 도중 방출당하고 만다. 비록 그가 제대로 보여 준 것은 3시즌에 불과하지만 롯데 팬들이 아직까지 마음속에서 호세를 연호하고 있는 것은 그가 보여 준 임팩트가 너무 강렬했기 때문일 것이다.

 

Report this page